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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ul>
=== 인간의 행위가 가져다 주는 것 ===
<ul><li> 자기의 활동의 결과를 모두 안다면, 그 활동은 시시한 것임을 알리라.</li><li> 어떤 일에 있어서나 성공을 결정하는 첫째이며 유일한 조건은 참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일의 가장 큰 장애가 된 것은, 특히 이제껏 나에게 최대의 손해를 준 것은 공연한 참견이었다. 이 사실을 깊이 새겨야 한다.</li><li> 좋은 일은 항상 불의에 닥쳐오는 것으로 노력하면 할수록 도리어 멀어지는 것이다.</li><li> 인간의 행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의 의지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li><li> 인간은 하여야 할 일을 안 해서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타락시킨다. 그러므로 좋은 생활을 하려고 함에 있어 사람이 경계하여야 할 일은 하여서는 안 될 일을 않도록 하는 일이다.</li><li> 인간은 자기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았을 때 비로소 자기가 무엇을 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하여선 안 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하여야만 할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설령 무엇 때문에 자기가 그 일을 하여야 하는지는 모르더라도.</li><li> 문-급할 때는 무엇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가. 답-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li><li> 의기소침했을 때는 병자를 거들듯 자신을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li><li> 곤란한 상황이라고 생각할수록 행동을 일으킬 필요는 없게 된다. 우리는 항상 행동을 일으킴으로써 그러지 않아도 좋아지려는 일을 망쳐 놓고 만다.</li><li> 일에 쫓겨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사람들은 자주 천진한 오락을 거절한다. 그런데 소박하고 유쾌한 게임을 하는 편이 어지간한 일보다 필요하며 중요하다는 일은 덮어 놓고라도, 바쁜 사람들이 오락을 가까이하지 않는 그 일이란 대개는 않는 편이 나은 시시한 일인 것이다.</li><li> 신앙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신앙의 설명에 불과하며, 사회적·국가적 생활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신앙 그것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얹힌 정도는 이제 올 데까지 와 있어서 대다수의 문명인은 경관에 대하는 신앙만을 가지고 생활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li><li> 국가가 국민에게 매력을 잃은 것은 위정자들이 자기들은 국민의 노동을 이용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임에 틀림없다.</li><li> 나는 하나님과 인간의 계율을 차례로 깨뜨리는 따위의 법률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또 인정할 수도 없다.</li><li> 권력의[[권력]]의 토대는 육체적 폭력이다.</li><li> 말하기도 두려운 일이지만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인간끼리의 집단적 폭력은 없었고 지금도 없다.</li><li> 물레방아는 가루를 잘 빻기 위해서 필요하다. 인생은 삶을 훌륭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것이다.
</li></ul>
 
=== 행복에의 초대 ===
<ul><li> 모든 사람은 내 몸의 행복만을 바라고 살아가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사람들이 가지지 않는다면, 그 인간은 자기가 산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사람은 나의 행복을 비는 기분이 없이는 인생을 생각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산다는 것은 행복을 획득한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li><li> 인간의 생활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리에 들기까지의 일련의 행위이다. 사람은 날마다 자기에게 가능한 무수한 행위 속에서 자기가 하여야 할 행위를 끊임없이 선택하여야 한다.</li><li> 만일 사람이 남이 사는 것을 모르고, 쾌락이 만족을 주는 일이 없음을 모르고, 또 이윽고는 자기가 죽는 일이 있음을 모르고 생존한다면 그는 자기가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다.</li><li> 동물적 개인의 행복을 버리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삶의 법칙이다.</li><li> 개인의 행복을 버리는 일은 미덕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며, 인간의 삶의 피할 수 없는 일이다.</li><li> 동물에게 있어서는 자기 하나의 행복을 목적하지 않는 행동, 즉 자기 자신의 행복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행동은 말할 것도 없이 사는 것을 부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전혀 이것과는 반대다. 자기 하나의 행복만을 얻으려는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완전한 부정이다.</li><li>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우리가 자기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의 사업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li><li> 기뻐하라! 기뻐하라! 인생의 사업, 인생의 사명은 기쁨이다. 하늘을 보고, 태양을 보고, 별을 보고, 풀을 보고, 나무를 보고, 동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기뻐하라. 그 기쁨이 어느 무엇에 의해서도 깨지지 않도록 감시하라. 이 기쁨이 깨어지면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신이 어디서든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잘못을 찾아내어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