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68 바이트 제거됨 ,  9년 전
편집 요약 없음
'''이광수'''(李光洙, [[1892년]] [[3월 4일]] - [[1950년]] [[10월 25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소설가이자 작가, 시인, 문학평론가, 페미니즘 운동가, 언론인이었으며, 사상가, 기자, 번역가, 자유주의 운동가이기도 했다. [[2.8 독립 선언]]에선언에 참여한 뒤 [[상하이]]로상하이로 건너가 [[신한청년당]]과신한청년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임정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을 운영하였다.
 
1922년 질병과 임정의 내분으로 귀국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의 언론에 종사하였고 [[민족 개조론]], [[민족적 경륜]]으로경륜으로 심한 빞나을 받기도 했다. 그뒤 [[수양동맹회]]와수양동맹회와 [[수양동우회]], [[흥사단]] 원동지부의 결성을 주관했고,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변절하여 총독부에 협력하였다. 해방 후 [[1950년]] [[6.25 [[전쟁]]때 납북되었다.
 
== 어록 ==
* "그의 느리고 부지런함, 그의 유순함. 그러면서도 일생에 한두 번 노할 때에는 그 우렁찬 영각, 횃불 같은 눈으로 뿔이 꺾이도록 맥진(驀進)함, 그의 침묵함...<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12/31/2008123101113.html <nowiki>[</nowiki>만물상<nowiki>]</nowiki> 새해] 조선일보2008. 12.31 </ref>"
*: 수필 '우덕송(牛德頌)'의 일부
 
* '아이들에게도 순순히 끌려가는 모습이 [[예수]]와 닮아 거룩해 보이기도 하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1/02/2009010201185.html 암소 꼬리 뻗쳐지면 '우박' 날씨 아는 소처럼 우리도…]</ref>'
 
* "조선인은 허위(虛僞)되고, 공상과 공론만 즐겨 나태하고, 서로 신의와 충성심이 없고 술수를 부리며, 임사(매사)에 용기가 없고, 이기적이어서 사회봉사심과 단결력이 없고, 극히 빈궁하고.<ref name="parkeu3056">박은봉, 《한국사 100 장면》 (가람기획, 1998) 305</ref>"
 
* "일반 민중이 도덕적 이상이 퇴폐해서 인생의 의무라든가 사업이라든가 하는 높은 희구를 버리고 오직 성욕과 호기심만 따르게 되니, 에로란 성욕적 흥미를 만족시키는 관념군이요 그로란 호기벽을 만족시킬 만한 관념군<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9/03/2012090302503.html <nowiki>[</nowiki>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nowiki>]</nowiki> <nowiki>[</nowiki>70<nowiki>]</nowiki> '에로·그로·넌센스'의 1930년대] 조선일보 2012.09.04</ref>"
 
“주정 잘하기로 첫째가 아라사(俄羅斯), 둘째가 일본, 셋째가 조선사람<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4102770371 <nowiki>[</nowiki>만물상<nowiki>]</nowiki>주사(酒邪)파 척결] 조선일보 2004.10.27</ref>”

편집

2,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