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32번째 줄:
 
* 사찰의 개왓장마다 찬 땀이 흐를 일<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4/2012102403214.html 절에서 술판 벌인 '新풍류남녀'] 조선일보 2012.10.24</ref>
 
* "국가의 생명과 나의 생명과는 그 운명을 같이하는 줄을 깨달았노라… 나는 이름만일 망정 극단의 크리스천으로, 대동주의자로, 허무주의자로, 본능만족주의자로 드디어 애국주의에 정박하였노라.<ref>[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26/2009022600221.html 한국 근대 100년을 바라보는 시각들] 조선일보 2009.02.26</ref>"
 
*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가 올바르게 운영될수 있을까?
줄 39 ⟶ 41:
 
* 근년에 조선에 유행되는 가요는…'부어라 먹자 두들겨라'식이 아니면 주색의 방종한 향락을, 검열관이 허하는 한에서 고취하는가 십흔 것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2/05/2012020501187.html <nowiki>[</nowiki>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nowiki>]</nowiki> <nowiki>[</nowiki>10<nowiki>]</nowiki> 축음기와 레코드가 몰고 온 '유행가 범람시대'] 조선일보 2012.02.06</ref>
 
* "얼마 후에 결국 한국의 토지는 뜨거운 모래가 막막한 사막이 되어 푸른 언덕은 공허한 역사적 이름이 되어 후대의 사람들의 호기심만을 움직일 뿐이게 될 것이나이다. 조선 민족의 생사는 한산의 초목과 그 생사흥망을 같이해야 함에 있을진저.<ref name="yeoh">[http://news.donga.com/3/all/20120718/47850932/1 이광수 18살 때 쓴 미공개 여행기 찾았다] 동아일보 2012.07.18</ref>"
: 1910년 3월 24일 경부선에서
 
* "이것을 쓰는 것은 가이타시(海田市)와 히로시마(廣島)의 사이이다. 하늘은 활짝 개어 있고 뜨거운 해는 여름처럼 차장에 쨍쨍 부딪힌다.<ref name="yeoh"/>"
: 1910년 3월 23일 오후 세시 차안에서
 
* 저 ‘화랑’의 사상이란 오늘날 막 바로 부활시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ref name="dcmmi"/>
줄 50 ⟶ 58:
 
* "(고구마 꽃은) 백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꽃<ref>[http://kid.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7/30/2009073000989.html <nowiki>[</nowiki>지상 식물원<nowiki>]</nowiki> 나팔꽃을 닮았네 '고구마 꽃'] 조선일보 2009.07.31</ref>"
 
 
* "멀리서 희미하게 안개 낀 한산(韓山)이 눈에 들어왔을 때의 나의 심정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무언가, 한산에는 태양의 빛도, 우주에 가득 차 흐르는 태양의 광선도 여기 한산에는 비추지 않는 모양이다.<ref name="yeoh"/>"
: - 1910년 3월 24일 부산역에서
 
* "히로시마의 활짝 갠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일본 풍경의 주된 색조를 이루고 있다면 조국 조선은 "태양의 빛도, 우주에 가득 차 흐르는 태양의 광선도 비추지 않는" 검은색의 풍경이다.<ref name="yeoh"/>"
 
* "일어나라, 우리 소년 제군!<ref name="yeoh"/>"
 
* "오늘은 부산진의 장날에서 많은 백의(白衣)의 우리나라 사람(國人)이 소를 찾아 모여든 걸 목격했소이다. 백의를 입고는 있었으나 마음은 희지 않은 듯 보였소이다. 또한 특별하다 느낀 것은 소와 우리나라 사람에 대해서외다. 다른 것이 아니라 소는 용케 그 나라 사람의 상태, 성질(모두 오늘날의)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외다. 바꿔 말하면 소는 우리나라 사람의 심볼이라고 생각되어 정이 떨어지는 (情なき) 차제이오. 오호라, 소의 심볼을 버리고 호랑이의 심볼을 얻음은 언제의 일이런가! 일어나라, 우리 소년 제군! 한산(韓山)은 늙어서 그 푸름이 황모(黃毛)로 바뀌고 황모마저도 벗겨져 얼마 남지 않았으니, 수천의 한산이 완전한 붉은 사막이 되어 버렸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소이다.<ref name="yeoh"/>"
: 1910년 3월 24일 경부선에서
 
* "소년제군이여, 이것을 듣고 어떠한 느낌을 일어나느뇨. 천제(天帝)께서 인생(人生)을 만들 때에 동등하게 두 눈, 두 손, 두 다리를 내려 주신 것이 아닌가. 어떠한 부족함이 있어서 저들 왜국(倭國)에 의해 압제(壓制)를 받는 것인가. 이목구비를 갖춘 신한소년 제군은 이것을 생각하여 세월을 헛되이 하지 말고 자기의 목적과 자기의 천재를 발휘하여 그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라, 신한(新韓)을 어깨에 짊어질 대한 소년들이여<ref name="yeoh"/>"
 
 
* "세상에 백두산만한 명산도 없지만, 백두산만큼 매몰된 명산도 없습니다. ...(이하 중략)... 무엇보다 그 주인인 조선인에게 가장 심하게 백두산이 대접받지 못함이 가장 애닯습니다. 백두산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야 없겠지만 또 백두산이 우리 민족에게 소중한 산인 줄 모르는 이야 없겠지만 한 걸음 나아가 백두산의 국토적 성질, 민족적 관계, 자연 및 인문상 실제적 사정에 대하여 묻는다면 우리가 가진 지식이 너무 작고 부족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하 중략)... 알아야 할 까닭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알고자 하는 노력도 있을 까닭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하 중략)... 그러나 백두산을 우리가 이렇게 알아야 옳으며, 또 이렇게 알아도 그만이리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f>[http://san.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19/2010031900987_3.html 1935년, 동계 백두산에 처음 오른 일본인들 이야기]</ref>"
: [[1936년]] '계명', '백두산' 정상 등반 소감
 
* "체격이 팔다리나 몸통이 자로 잰 듯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바로 맞고, 몸 쓰는 것, 걷는 것 등 모든 동작이 날씬하여 남의 눈에 조금도 거슬리게 보이지 않고... (이하 중략)... 또 취미와 그 정신이 아울러 고상하다면 그야말로 내가 찾는 미인이 될 것<ref name="dongkks">[http://news.donga.com/3/all/20110305/35323889/1 <nowiki>[</nowiki>인문사회<nowiki>]</nowiki>‘미인 권하는 사회’… 몸에 집착하는 한국인] 동아일보 2011.03.05</ref>"
 
* "얼굴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윤곽에다가 눈은 어디까지든지 크고 처진 듯하며 코나 귀가 복스럽게 예쁘고 살결이 하얀 분<ref name="dongkks"/>"
 
* "아랫목에 '뜻뜻이' 등을 굽고 있는 생활은 암만 해도 투쟁보다도 은둔을 의미한다.<ref>[http://news.donga.com/3/all/20101204/33063184/1 뜨끈한 온돌서 조선문화가 태어났다] 동아일보 2010.12.04</ref>"
: 1934년 조선일보에 실은 글에서
 
* 우리 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독립을 포기하는 것'이며 모두 일본국민이 될 것<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10/02/2007100200585.html 끝나지 않은 이광수의 친일행적 논란]</ref>
 
* "일제의 한반도 지배가 36년 만에 끝나지 않고 100년 이상 계속될 줄 알았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26/2009022601750.html 예측과 예언] 조선일보 2009.02.26</ref>"
 
* "설산은 호 그대로 개방적이요, 결백하고 어린애와 같이 표리가 없는 사람"
: - [[1947년]] [[12월 8일]] 설단 [[장덕수]] 장례식에서 낭송한 추도사 중에서
 
* "창파에는 명월이요, 청산에는 청풍이라.<ref>[http://news.chosun.com/svc/content_view/content_view.html?contid=2000101170354 해운대서 송정까지...절경과 먹거리의 조화] 조선일보 2000.10.11</ref>"
 
* "나에게 아무 것도 베푼 게 없는 조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건만 돌아온 것은 민족의 변절자라는 비난뿐<ref>[http://news.donga.com/3/all/20120904/49092643/1 <nowiki>[</nowiki>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nowiki>]</nowiki> 근대적 욕망의 윤리적 파멸… 삼국유사와 조우하다] 동아일보 2012.09.04</ref>"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