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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의 저항이 상상 이상이었다. 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특권집단으로서 검찰은 개혁 의지가 박약했고, 검찰을 둘러싼 보수세력의 힘도 막강했다.
**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에서
 
* 제가 권력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시대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권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의 권력 의지라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2012년 9월 16일,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 《사람이 먼저다》 (2012), p.24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717093 문재인 대선후보 수락연설문]
 
*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 2012년 9월 16일,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 2012년 9월 16일,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3&aid=0004717093 문재인 대선후보 수락연설문]
 
* 친노·비노, 친노 패권주의라는 분열 프레임을 못 넘으면 승리는 없다 … ‘문재인은 친노 수장’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노력하겠다.
** 〈정청래 “막말 사과” 주승용 “사퇴 불변”〉, 경향신문, 2015-05-11
 
=== 《문재인의 운명》(2011) ===
* 노 대통령과 나는 아주 작은 지천에서 만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다. 여울목도 많았다. 그러나 늘 함께 했다. 이제 육신은 이별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와 그는, 정신과 가치로 한 물줄기에서 만나 함께 흘러갈 것이다. 바다로 갈수록 물과 물은 만나는 법이다. 혹은 물과 물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법이다. 어느 것이든 좋다.
** p. 7
 
* 처음부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으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를 찾아오는 사건을 피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에 공감하면서 열심히 변론했다.
** p.38
 
* 나중에 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 때 부산을 둘러싸고 있는 울산, 창원, 거제는 한국노동운동의 중심이 됐다. 실정법상으로는 모조리 불법파업이었으며, 폭력적이기도 했던 대평 파업사건들. 그 사건들 거의 대부분, 어쩌면 전부를 우리가 맡아 변론했다. 이 땅의 노동운동이 뜨겁게 분출하던 그 역사적 현장에 우리도 함께 한 것은 두고두고 큰 보람이 아닐 수 없다.
** p.54
 
* 10월 유신은, 법대생에게는 더더욱 황당한 일이었다. 유신헌법이 만들어지자 기존의 법전과 교과서들이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그래도 법학이 과연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가', '법학이 과연 학문인가'라는 회의가 법대생들을 짓눌렀다. 수업에 들어가기 싫었다. 새 학기가 돼 학교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있었던 헌법교수의 첫 강의가 오래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꽤 유명한 헌법학자였던 그 분은 자신이 쓴 헌법학 책을 강의 교재로 썼는데, 휴교기간 동안 유신헌법 책을 새로 쓰고 새 책으로 강의를 했다.<br>100분 강의 내내 학생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교실 천장만 바라보면서 강의했다. 유신헌법 책을 쓰고 유신헌법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부끄러움을 제자들에게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 p.130
 
* 우리 쪽의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겪으면서도 검찰수사의 독립성과 중립을 보장해 줬다. 그렇게 마련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앞으로 검찰 스스로 잘 지켜나가길 원했다.
** p.238
 
* 대통령에게 충성심이나 애정이 강한 사람이 국정원 조직을 이용해 대통령을 도우려는 욕심을 혹시라도 갖게 되면, 그게 바로 망하는 길이라는 판단이었다.
** p.244
 
* 대통령은 파병에 대해 '나도 개인었다면 반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했다'고 술회했다. '옳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회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했다.<br> 진보 · 개혁진영은 지금도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잘못한 일 가운데 대표적 사례로 이라크 파병을 꼽는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파병이 논의될 당시 진보 · 개혁진영의 반대는, 정부가 최소규모의 비전투병 파병으로 결정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진보 · 개혁진영의 반대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반영되고, 그것이 6자회담을 통한 북핵위기의 해결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실이 드러나 있는 지금에 와서도 파병이 잘못이었다고 평가하는 데엔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이라크 전쟁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파병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국익을 위해 필요하면 파병할 수도 있다. 그것이 국가경영이다. 진보 · 개혁진영이 집권을 위해선 그런 판단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p. 270
 
* 사실 '인권변호사'란 말은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모든 변호사의 기본 사명이 인권옹호이기 떄문이다. 변호사법도 그렇게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독재 권력의 서슬 퍼런 엄혹한 현실 속에서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 p. 443
 
* 진보진영이 참여정부에게 신자유주의 딱지를 붙이는 것은, 반대쪽에서 참여정부에게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과 그 속성에서는 매한가지다.
** p.454
 
* 굴곡이 많고 평탄치 않은 삶이었다. 돌아보면 신의 섭리 혹은 운명 같은 것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br>그 한가운데에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더 어렵게 자랐고 대학도 갈 수 없었다. 어려운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나보다 훨씬 뜨거웠고, 돕는 것도 훨씬 치열했다.<br> 그를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br>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 말로 운명이다.<br>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 p.467
 
== 문형렬 엮음, 《대한민국이 묻는다》 (2017) ==
* 저에 대한 일부 언론의 공격은 제가 유화적인 발언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자기들 기득권을 위협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공격하게 돼 있습니다. 그 부분은 극복해야 할 문제고 결국은 국민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p. 85
 
* 저는 묵묵하고 꾸준한 사람이 좋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일이나 직업에 대한 태도에서, 꾸준하고 신의가 깊은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꾸준히 멀리 내다보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들이 좋아요.
** p. 108
 
* 김대중 대통령은 현실에 뿌리내린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이셨죠. [...] 그 말씀을 듣다 보면, 그분은 정치가이기 전에 사상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런 부분입니다. 우리 역사의 어떤 시기에 서양은, 중국은, 일본은 어떤 상황이었고 어땠는지 연대기적으로 쭉 관통하는 거예요. 보통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힘든데 말이죠.
** p. 111
 
* 우리가 한반도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도 발언권이 세지고 국제적인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대미관계에서도 제대로 대접받고, 한일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요.
** p. 205
 
* 한때 어떤 사람이 그런 기자회견을 했다. 내가 무슨 200톤의 금괴를 보유하고 있고, 더해서 수조 원의 비자금을 갖고 있다고. 그러면서 조 단위의 위조 수표를 물증으로 제시했는데, 형사처벌 받았다. 그 허위기자회견 내용을 지금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허위사실을 퍼뜨려도 위법이기 때문에 처벌받는다. 금괴 200톤이라면 한국은행이 공식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양보다 많다. 정말 그런 금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돈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싹 다 해결할 수 있으니.
** p. 345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