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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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 속암에속담에 "충직하고 온후한 것은 쓸모가 없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라는 것이 있는데, 조금은 너무 냉혹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히려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라고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수많은 고초의 경험을 귀납한 후에 나온 경구라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는다는 설을 보면, 그것이 만들어진 원인은 대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때릴 힘이 없는 경우이고, 둘째는 비교를 잘못한 경우이다. 전자는 잠시 논외로 하고, 후자의 큰 잘못에는 다시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거덜 난 인물을 물에 빠진 개와 같이 보는 잘못을 범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거덜 난 인물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지 못하고 일률적으로 동일시하여 그 결과 도리어 악을 방임하게 되는 경우이다. 즉, 오늘날을 두고 말하면 정국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참으로 굴러가는 바퀴처럼 이쪽이 일어나면 저쪽이 넘어지는 꼴이어서 나쁜 사람은 빙산에 기대어 거리낌 없이 나쁜 짓을 자행하고, 일단 실족하면 갑자기 동정을 구걸한다. 그러면 남이 물리는 것을 직접 보았거나 직접 물림을 당한 어리숙한 사람은 어느덧 그를 '물에 빠진 개'로 보면서 때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엾다는 생각을 가지고, 정당한 도리가 이미 실현되었으니 이때야말로 의협은 바야흐로 내 손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그놈은 진짜 물에 빠지지 않았으며, 소굴은 이미 잘 만들어 놓았고, 식량은 벌써 충분히 저장해 두었으며, 게다가 그것들을 다 조계에 해두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비록 이따금 부상을 당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아 기껏해야 절룩거리는 시늉을 하여 잠시 사람들의 측은지심을 불러일으켜 조용히 피해 숨으려는 것뿐이다. 다른 날 다시 나타나서 예전처럼 먼저 어리숙한 사람을 무는 일부터 시작하여 "돌을 던져 우물에 빠뜨리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 그 원인을 찾아보면 부분적으로는 바로 어리숙한 사람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 가혹하게 말한다면 역시 스스로가 판 무덤에 스스로 빠진 격이니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이다.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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