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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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o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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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국적으로 마오는 사회주의의 건설자로서보다는 경제적 근대화를 이룩한 사람으로서 더 성공적이었다. 마오주의의 경제적 유산을 비판하는 글들은 대개 업적보다는 결점에 더 주목하고 있지만, 마오쩌둥 시대에 공업총생산은 38배, 중공업생산은 90배 늘었다. 그것도 아주 미약한 근대적 공업기반에서, 그 생산마저 외세의 침략과 내전의 피해로 절반이나 감소한 상태에서 시작해 그런 결과를 낳았다. 마오쩌둥 시대 전체를 보면 중국의 순생산에서 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3%에서 50%로 증가했고 농업 비중은 58%에서 34%로 감소했다.
**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 마오의 산업혁명은 중국인민에게 고된 노동과 많은 희생을 요구했다. 그러나 E H 카는 이렇게 경고했다. "위험은 우리가 혁명이 낳은 거대한 오점, 인간의 고통스런 대가, 그것의 이름으로 자행된 범죄를 감추는 데 있지 않다. 위험은 우리가 모든 것을 망각해버리고 싶어할 뿐 아니라 그 엄청난 업적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버리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있다."<br>사회적 대격변은 이루지 못할 큰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기대가 좌절됐을 때, 꽤 오랜 시간 동안 실제로 이뤄진 역사적 성취가 무시되고 잊혀지면서 환멸감과 냉소주의가 뒤따른다. 우리의 인식에 깊이 박힌 것은 대약진과 문화대혁명의 오점이다. 이런 역사적 모험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초래했다는 것을 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런 실패와 죄상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인민공화국 역사에서 마오주의 시대를 세계역사상 위대한 근대화를 이룩한 시대의 하나로, 그리고 중국인에게 커다란 사회적 인간적 이득을 가져다준 시대로 틀림없이 기록할 것이다.
**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