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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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o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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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마오를 서술할 때 주목해봐야 할 것은 바로 마오가 혁명가이면서 정치가이지만, 동시에 이상주의적 사상가이면서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마오 연구가인 리저허우(李澤厚)도, 벤저민 슈워츠(Benjamin Schuwartz)도 이 점에 주목하는데, 마오는 학창 시절 다른 것은 몰라도 작문 시험에서는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리저허우는 마오의 사상적 특색이 그의 시사(詩詞) 창작 속에서 부단히 표현되었으며 마오의 사상과 개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청년 시절 마오는 “애석하게도 저는 지나치게 감정이 풍부하여 너무 의분에 빠져 슬퍼하고 분개하는 병폐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한 적이 있다. 벤저민 슈워츠는 심지어 마오에게서 시가 변증법, 인식론보다 더 중요한 철학의 핵심을 이룬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로 보면 마오의 주의주의와 주관주의는 그의 시적 감수성에 의해 강화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이런 면들을 배면에 깔고 마오의 극적인 인생과 사상을 살핀다면 그를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 조경란, "중국 지식인의 초상 마오쩌둥, 유토피아를 꿈꾼 시인이자 독재자", 주간조선 (2014.06.15)
 
* 마오쩌둥은 워낙 모순이 가득한 복잡한 인물이다. 연구자들마다 그의 지성과 광기 사이에서 접점을 찾느라 고심이다. 그의 뚝심과 지혜에 감탄 하는가 하면 그의 변덕과 잔인함에 놀란다. 혁명가로서의 집념과 집중력에 경탄하다가도 ‘조반유리造反有理’ 즉 ‘뒤집어엎는 것도 이유가 있다’라고 하며 스스로 창업한 것을 파괴해 버리는 그 반동성에 기겁을 한다. 하지만 마오쩌둥 연구자들의 공통된 견해가 하나 있다. 그는 인간 다이너마이트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말 기운이 강한 사람이었다. 창조하는 열정이든 파괴하는 정열이든 문자 그대로 에너지의 결정체였다. 그는 일찍이 자신이 호랑이의 기운과 원숭이의 기운을 갖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냉혹하고 무정한 일면과 낭만적이고 열광적인 일면 사이를 끊임없이 왕래한 이유가 바로 그런 성격 탓이 아닐까 싶다. 이른바 호랑이 기운이란 직선적이고 망 설이지 않는 결단력이다. 원숭이 기운이란 끊임없이 고민하고 구상하는 상 상력이다. 그의 극단적이고 끝을 보는 성미와 허황되다 싶을 만큼 순진한 공상이 바로 그 호기와 원기의 겸비에서 나온 것이다.
** 조광수,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현대 중국 정치와 리더십〉, 《오늘의 동양사상》(2007.10)
 
* 마오가 후대에 물려준 것은 복잡하고 풍부한 유산이며, 먹을 수도 없지만 버릴 수도 없는 과실이다. 중국 역사에서 보기 드문 유토피아 사상가이자 독재자로서 그의 사상과 실천 속에서 천재적인 상상과 심각한 후과가 하나로 교직되어 있다. 서방 공업 문명의 폐단을 피하고 비(非)서구의 현대화 노선을 탐색했던 천재적인 마오의 상상과 실험은 그가 새롭게 세워낸 전제체제와 이로부터 발생한 엄중한 후과가 하나로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