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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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Ko (토론 |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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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오의 인품은 충성심을 끌어냈지만 애정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는 성미가 불같았지만 동시에 무한한 인내심도 있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넓은 시야를 지녔으면서 세부 사항을 살필 때에는 지나치게 규칙에 얽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번 뜻을 세우면 굽힐 줄 몰랐지만 극도의 섬세함도 지니고 있었다. 공적으로 카리스마의 화신이었지만 사적으로는 음모가였다.
** 필립 쇼트, 《마오쩌둥》 (양현수 역)
 
* 마오쩌둥의 출발은 평범했다. 그는 교육을 많이 받지도 못했고 특출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확고한 자기 확신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들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중국 역사에는 지배자들이 자신의 절대 권력을 현명하거나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했으면서도 몇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개인의 권위나 심복들과 호위병의 힘을 이용하여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잠재웠던 오랜 전통이 있었지만, 마오쩌둥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강인하고 가장 색다른 지배자였다. 사실 그는 다른 지배자들처럼 처신할 필요가 없었다.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그의 야망을 폭력과 공포로 꺾어버린 사람이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화려한 언변과 불굴의 의지로 수억 명의 중국인들을 동원했으며, 중국인들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자신들의 에너지를 억제하려 해도 억제할 수 없었다.
** 조너선 스펜스,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남경태 옮김)
 
* 중국의 사상가들에게, 무질서는 언제나 질서 안에 내재된 질서의 한 측면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증법적 사고가 체화된 사람들이어서, 모든 사물은 그 자체 안에 자신의 대립물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고대 중국 철학자들의 그런 통찰들을 완벽하게 소화하여 서구의 사회주의 사상에서 끌어낸 요소들과 결합시키고, 그렇게 결합시킨 두 요소를 이용해 '무질서'라는 한정된 개념을 크게 확장한 뒤 그것을 장구한 격변의 모험 속에 끌어들였다. 그것은 가공할 업적이었다.
** 조너선 스펜스, 《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남경태 옮김)
 
* 마오는 대민주를 실현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관료주의를 꼽았다. 그는 관료주의가 만연하게 되면 대민주는 물론 소민주, 소소민주(小小民主)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마오에게 민주주의는 인민대중의 직접참여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그에게 관료주의는 이런 인민의 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소였다. 이런 마오의 인민주의적 민주주의 사상은 문화대혁명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 시기 마오는 당과 국가기관에 만연하고 있는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인민대중의 직접적인 참여라는 “대민주”의 방식 을 동원해 문화대혁명을 발동하게 된다. 물론 문화대혁명은 마오 개인에 대한 개인숭배로 발전하여 인민주의가 또 다른 극단적인 형태로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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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더 판초프, 스티븐 레빈, 《마오쩌둥 평전》 (심규호 역)
 
* 10월 혁명 이전까지 세계에서 지도적 역량을 발휘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였던 위대하고 강력한 러시아를 파멸로 몰고 간 레닌이나 스탈린과 달리 마오쩌둥은 중국을 반식민지 사회에서 독립적이고 강력한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사회 관계를 변혁시킨 혁명가일 뿐만 아니라 쑨중산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중국인을 존중하게 만든 위대한 반제국주의 혁명을 실현시킨 민족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오랜 기간 분열되어 권력 투쟁을 일삼고 내전으로 신음하던 중국 대륙을 통일시켰다. 중국이 마침내 세계의 지정학적 중심지 가운데 한 곳으로서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초강대국과 정치적으로 등거리에 위치하여 세계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도 그가 통치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마오쩌둥의 통치 시기에 중국인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중국 경제는 낙후된 상태였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고대 왕조 시대와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중국인들이 결코 '위대한 조타수'를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br>마오쩌둥은 민족 해방을 가져왔지만 사회적 노예 상태를 조성하기도 했다. 기만과 폭력을 통해 중국 인민들에게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고통을 강요하고, 그들을 피로 물든 사회적 실험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것은 바로 그와 그가 이끈 공산당이었다. 수억 명의 삶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수천만 명이 기아와 억압 속에서 비명횡사했다. 모든 세대가 세계 문화와 고립된 채로 살아야만 했다. 마오쩌둥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는 스탈린을 비롯한 21세기 다른 독재자들의 사악한 행위 못지않게 끔찍했으며, 그 규모 면에서 훨씬 컸다.
** 알렉산더 판초프, 스티븐 레빈, 《마오쩌둥 평전》 (심규호 역)
 
* 중국의 유능한 정치가, 역사가, 시인, 철학자, 막강한 권력을 지닌 독재자, 활기 넘치는 조직가, 숙련된 외교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의 국가 원수 등 이미 성취한 것에 안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수백만 인민의 삶과 사고방식을 개조하고자 했던 지칠 줄 모르는 혁명가이자 민족 혁명과 피비린내 나는 사회 개혁의 영웅이기도 했다. 이것이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마오쩌둥의 모습이다. 그가 보여준 삶은 규모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그 의의를 한 가지로 말할 수 없다.<br>또한 이것이 그가 중국의 중심지에 자리한 황제의 능묘(마오쩌둥 주석 기념당)에서 영면하고, 광장에 그의 대형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는 그곳에 오랜 시간, 어쩌면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마오쩌둥 현상은 복잡성과 모순성을 모두 갖춘 20세기 중국의 전체 궤적을 반영하며, 아울러 과거에서 벗어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난 80년 동안 위대하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낙후한 동방의 대국이 보여 준 궤적을 반영하고 있다.
** 알렉산더 판초프, 스티븐 레빈, 《마오쩌둥 평전》 (심규호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