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플라톤)
어록
편집- 훌륭한 사람들이 돈 때문에도 명예 때문에도 통치하고자 하는 일이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세. 그들은 통치의 대가로 드러내 놓고 보상을 요구함으로써 고용인들로 불리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또한 스스로 통치를 구실로 몰래 보상을 취함으로써 도둑들로 불리길 바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일세. 그렇다고 명예 때문에 그럴 일도 없다네.
- 1권, 347b (박종현 역)
관련 어록
편집- 제1권의 논의 전개
소크라테스가 전날 있었던 일과 자신이 여러 사람과 대화를 갖게 되었던 경위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떤 사람을 상대로 먼저 말하고 그 대화 내용을 자세하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이 대화편은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외항(外港) 피레우스로 가서 낯선 축제 행사 구경을 하고, 시내로 돌아오려던 참이었는데, 폴레마르코스의 권유를 받아, 그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버지인 케팔로스옹을 만난다. 그를 반갑게 맞는 노옹에게 소크라테스는 노령에 지내기가 어떤지를 묻는다.
노옹이 문제가 되는 것은 노령이 아니라, 생활 습관이라고 하자, 세상 사람들은 노인이 그런대로 노년을 잘 지낼 수 있는 것은 가진 재산 덕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하며, 재산을 가짐으로서 덕을 보게 되는 것 중에서 어떤 점이 가장 좋은지를 묻는다. 노옹은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데 있어서, 또는 신들한테 제물(祭物)을 빚지거나 남한테 재물을 빚진 상태로 저승으로 가게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재산의 소유가 큰 기여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말 속에 사람이 올바르게 처신하고서 죽음을 맞게 되는 데 재산이 기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소크라테스는 생각하게 된다. 노옹의 이런 말을 기화로 ‘올바름’을 정직함과 남한테 갚을 것을 무조건 갚는 것이라 규정할 것인지를 문제 삼게 된다. 그러나 노옹은, 제물을 바치는 일 때문에, 장남인 폴레마르코스에게 논의를 상속하듯 인계한다. ‘각자에게 갚을 것을 갚는 것, 각자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폴레마르코스의 주장을 갖고 소크라테스는 다각도에 걸친 검토를 하게 된다.
이들이 주고받는 긴 논의를 듣고 있던 트라시마코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면서 화를 내며, 소크라테스한테 올바름이 무엇인지를 직접 말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무지자(無知者)를 자처하는 소크라테스인데다,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가견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트라시마코스인지라 올바름은 ‘더 강한 자의 편익’이라고 거침없이 규정하면서, 그 예를 들어, 정권을 장악한 지배자가 강자인 자신에게 편익이 되는 걸 법으로 정하여 이걸 약자들인 피지배자들이 이행토록 공표하는데, 결국 이게 올바른 것이 된다고 한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 ‘편익이 되는 것’이란 점은 인정하나, 그게 강자의 편익일 수는 없다는 반론을 편다. 의술이나 조타술의 경우에서 보듯, 그 어떤 기술이나 다스림도 그것을 지닌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의 시혜를 입을 약자를 위한 것이듯, 치술(治術)도 그 자체는 약자인 피지배자들을 위한 것임이 밝혀진다. 이에 트라시마코스는 실제 현실로는 올바르지 못함이 이득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잘 살고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잘 사는 것’이란 ‘훌륭하게 사는 것’ 인데, 올바르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 반면에, 올바르지 못하게 사는 것은 ‘잘못 사는 것’임을 사람의 훌륭한 상태와 관련지어 그의 주장을 설파한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51-52
- 제2권의 논의 전개
트라시마코스가 쉽게 포기한 주장을 글라우콘은 그냥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되살려 냄으로써, 소크라테스의 강한 반론과 함께 올바름에 대한 더 적극적인 주장을 유도해 내는 작전을 구사한다. 그래서 먼저 좋은 것들에는 세 가지가, 즉 그 자체로 좋은 것과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에 좋은 것 그리고 그 자체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에서 생기는 결과 때문에도 좋은 것이 있겠는데, 이들 중에서 어느 것에 올바름이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소크라테스한테 묻고선, 그야 물론 마지막에 언급된 것에 속한다는 대답을 얻어낸다.
그러나 글라우콘은 아데이만토스와 합세하여 올바름은 그 자체로는 기피할 성질의 것이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수나 평판 따위의 결과 때문에 사람들이 좋게 생각할 뿐인 것이라고 하며, 올바른 사람보다도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누리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함을 말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이에 맞서 올바름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밝히는 일에 착수한다.
그런데, 올바름에는 개인의 것도 있겠지만, 나라 전체의 것도 있겠으니, 큰 규모의 것에서 이를 찾는 게 더 쉽겠다며, 거기에서 이를 먼저 찾아보기로 하고, 나라(polis)를 이론상으로 수립해 본다. 성향에 따른 분업의 효용성 때문에 생기게 된 공동체인 나라는 ‘최소한도의 나라’에서 시작하여 ‘호사스런 나라’로 확대되어 감으로써, 온갖 직업을 갖는 많은 사람이 사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게 되어, 영토 확장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는 결국 같은 현상을 겪게 되는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를 상황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리하여 나라를 지키고 다스릴 수호자들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들이 수행해야 할 일은 다른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맡을 일보다도 더 중요하며, 그만큼 더 전문성을 요하는 것이므로, 이에 적합한 성향의 아이들을 선발해서 교육하는 일이 중대한 문제로 제기된다. 먼저 착수하게 되는 교육은 시가(詩歌)의 교육인데, 감수성이 예민한 순진무구한 시기의 아이들에 대한 시가 교육은 그 내용이 바람직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시가의 내용이 되는 설화에 등장하는 신들에 관한 묘사에 있어서 시인들이 지켜야 할 규범에 관한 언급을 하게 된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 121-122
- 제3권의 논의 전개
제2권에 이어,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시가의 내용과 관련해서 죽음과 저승에 대한 그리고 영웅들에 대한 묘사에 있어서 시인들이 지켜야 할 규범들이 먼저 언급된 다음, 인간들과 관련해서도 올바른 자들의 삶과 올바르지 못한 자들의 삶을 잘못 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임이 강조된다. 이렇게 해서, 무엇이 이야기되어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끝났으므로, 다음으로는 그런 내용의 시가가 어떻게 이야기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그래서 설화의 이야기 투와 이야기 진행 방식에 관한 언급과 함께 모방과 관련된 언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시가에는 음악적 요소가 중요한 한 부분이므로, 노래 말에 이어 선법(旋法)과 리듬 그리고 악기에 관한 언급이 이어진다. 시가 교육에 이어, 체육에 관한 논의를 하게 되는데, 체육이라 해서 몸을 보살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시가와 함께 혼을 위한 것임이 강조된다. 시가 및 체육을 통해 혼의 격정적인 면과 지혜를 사랑하는 면이 적절할 정도만큼 조장되고 이완됨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되도록 하는 데 이것들을 통한 교육의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그래서 단순한 신체적 단련과 함께 단순한 식생활이 강조된다. 이런 교육 과정을 거친 아이들 가운데서 장차 완벽한 수호자들 즉 통치자들로 될 사람들을, 넓은 의미의 수호자들 즉 그들의 보조자들 또는 협력자들과 구별해서 선별해 내기 위한 온갖 시험을 한다. 이리하여 이들의 선발이 끝난 다음에는, 이들의 성향을 무시한 신분 이동을 막기 위한 장치로 건국 신화를 짓는다. 그러나 수호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한 특권적인 생활이 아니라, 공동 주거에서 영위하게 되는 통제된 공동생활이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183
- 제4권의 논의 전개
나라의 수호자들로 선발된 사람들이 특혜를 누리기는커녕 오히려 엄격히 통제된 공동생활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기에, 이들이 결코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고는 볼 수 없지 않겠느냐는 아데이만토스의 지적이 있자, 소크라테스는 이 나라의 수립 목적이 원래 무엇인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은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든다면, 그런 나라에서야말로 올바름(올바른 상태)이 실현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완벽하게 훌륭한 나라, 즉 ‘아름다운(훌륭한) 나라’ (kallipolis, 제7권 527c)에서는 올바름만이 아니라, 지혜와 용기 그리고 절제도 찾아 볼 수 있음을 확인하고, 먼저 이것들 각각이 특히 어떤 부류의 사람들(집단)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인지를 알아본다. 이 나라가 지혜로울 수 있는 것은 소수인 통치자들의 지혜에 의해서요, 용기 있는 나라로 되는 것은 넓은 의미의 수호자들이 두려워할 것들과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대해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을 지속적으로 보전하고 또 그럴 수 있는 능력을 가질 때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다.
반면에 절제는 누가 나라를 다스릴 것인지에 대해서 다스릴 쪽과 다스림을 받을 쪽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고 ‘한마음 한뜻’ 이 이루어졌을 때, 이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임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올바른 상태는 이 나라를 구성하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신의 일을 함으로써 실현을 보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러, 이를 올바름에 대한 의미 규정으로 채택하게 된다. 그러나 나라에 있어서 확인하게 된 이것들이 개인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각자의 혼에도 이런 세 부분이 있는지에 대한 긴 논의가 있은 끝에, 이를 확인하게 된다. 곧이어 원래의 문제로 돌아가서, 올바른 삶과 그렇지 못한 삶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이득이 되는지를 알아보려 하나, 이 문제는 다시 뒤로 미루어진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255-256
- 제5권의 논의 전개
제4권 끝에서 잠시 내비친 잘못된 정치 체제들과 잘못된 혼들의 유형들에 관한 언급을 소크라테스가 하려 들자, 모두가 이를 제지하고서는, 앞에서(423e~424a) 언급된 중요한 문제, 즉 처자의 공유와 그것에 따른 혼인 및 출산의 문제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먼저 요구한다. 한데, 아내의 공유는 곧 남편의 공유를 의미하므로, 모든 것과 관련해서 성향 또는 자질이 같은 남녀의 평등한 권리와 의무가 강조된다.
결국 ‘공유’ (koinonia)의 문제는 ‘공동 관여’ (koinonia)의 문제로 귀착되어, 교육을 받음에 있어서도 나라의 수호에 있어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다음으로 이의 제도적인 가능성과 유익성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그래서 복합적인 제도적 장치와 함께 이런 국가 체제가 가져다주는 최대의 장점이 소유 문제나 고통 및 즐거움과 관련된 공유 의식과 ‘공감 상태’ 임이 언급된다. 결국 이런 나라의 이론적 수립은 그 실현성 자체보다도 이른바 ‘아름다운 나라’ 의 ‘본’을 갖기 위한 작업이었음이 시인된다.
그러나 굳이 그 실현성을 말한다면, 이는 진정한 의미의 ‘철인치자(哲人治者)’에 의해서만이 가능하다고 한다. 현실적인 통치권과 참된 지혜가 같은 사람(들)에 있어서 통합되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폭탄적인 선언은 현실의 정치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한테서 일제히 공격받을 주장이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어느 특정한 철학자들이 아니라, 참된 철학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정의해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지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시작된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315-316
- 제6권의 논의 전개
제5권에 이어, 철학자들이 추구하는 앎이 나라의 경영과 관련되는 ‘본’의 성격을 갖는 실재(實在)에 대한 것임을 언급한 뒤에, 이런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철학자의 성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철학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가 않다. 먼저, 철학은 유능한 사람들을 무능한 사람들로 만들고, 따라서 무익하다고 해서다. 철학을 하기에 훌륭한 자질을 가진 젊은이들을 주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 철학은 젊어서 잠시 해 볼 것이지, 그걸로 오랜 세월을 보내다가는 무능한 인간으로 전략해 버린다고 하며, 그들을 철학에서 멀어지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그 밖에도 그들을 철학에서 멀어지게 하는 현실적 요인들은 많다.
그래서 망명자나, 위대한 혼을 지녔으되 너무 작은 나라에 태어나 국사를 다룬다는 것 시답잖게 여기는 사람, 몸이 허약해 현실 정치에 관여할 수 없는 사람, 또는 소크라테스처럼 영적인 계시를 받은 사람 등이 겨우 철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니, 철학적 자질을 갖추지도 못한 엉뚱한 사람들이 그 근사해 보이는 허명을 얻기 위해 철학을 하게 되어, 철학에 오명을 안기게 되고,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고울 수가 없다.
그러나 나라가 철학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서는 훌륭하게 나라를 경영할 지도자를 가질 수가 없는데, 이는 제도적인 교육을 통해서 실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교과 과정과 함께 ‘가장 중요한 배움’ 으로서 ‘좋음(善)의 이데아’ 에 대한 언급이 있게 된다. 이 좋음의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 이른바 ‘태양의 비유’를 하게 되고, 이 인식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의 앎의 대상들에 대한 구분을 하기 위해 이른바 ‘선분(線分)의 비유’를 하게 되며, 이를 통해 각각의 지적 대상들에 상응하는 인식 주관의 지적인 상태들에 대한 언급도 동시에 하게 된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383-384
- 제7권의 논의 전개
제6권에서 ‘태양의 비유’ 와 ‘선분의 비유’를 통해서 시도된 ‘좋음(善)의 이데아’ 와 앎의 대상들 및 앎의 단계들에 대한 도식적 설명 대신에 제7권에서는 ‘동굴의 비유’를 통해서 좀더 실감나는 입체적 설명을 하게 된다.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실재(實在)의 세계를 각기 비유한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실재들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 인식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비 교육의 단계가 필요하고, 따라서 이를 위한 교과들이 제시된다. 이 예비 교육이 끝난 다음에야 변증술에 대한 집중적인 단련을 거치게 한다. 그러나 변증술적 논변의 오용과 관련된 위험성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런 단련을 거친 다음에는 오랜 세월 동안의 실무적인 경험을 쌓게 한다. 이제 그동안의 교육과정을 밟게 하는 각 단계의 연령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쉰 살이 된 적격자들로 하여금 통치를 위한 본을 갖도록 하기 위해 ‘좋음의 이데아’ 에 대한 인식의 길로 들어서게 함으로써, 마침내 철인치자들의 확보 가능성이 보이게 된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447
- 제8권의 논의 전개
제5권 첫머리에서 소크라테스가 잘못된 정체(政體)들의 네 유형과 이것들을 닮은 혼의 유형들에 대한 언급을 하려다 제지를 받고서, 최선자[들의] 정체와 이를 닮은 철인치자에 관련된 언급을 제7권까지에 걸쳐 하게 되었다. 이제 이 논의가 끝났으므로, 다시 앞서 한 논의로 돌아간다. 네 가지 유형의 대표적인 정체들은 최선자 정체가 점진적으로 쇠퇴되어 감으로써 생기게 되는 형태들인데, 이는 우생학적으로 훌륭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의 출산에 실패하여, 통치자들 속에 이질적 성향을 지닌 자들이 섞이게 된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처음으로 변질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정체가 ‘명예 지상(至上) 정체’ 또는 ‘명예 지배 정체’ 로 불리는 것으로서, 이는 최선자 정체와 과두 정체의 중간에 있는 것이다. 이 정체에서는 이성적인 것보다도 격정적인 것이 우세한 탓으로, 승리와 명예에 대한 사랑이 지배하는데, 축재에 대한 욕구도 대단하다. 그 다음으로 생기게 되는 것은 과두 정체인데, 이 정체는 평가 재산에 근거하여 통치자들을 갖는다. 따라서 이 정체에서는 끝없이 재산을 끌어 모으는 부류와 이들에게 재산을 넘겨주게 된 가난한 부류가 대립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민주 정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은 이 대립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김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과두 정권을 장악했던 자들을 숙청한 다음, 모두가 평등권을 누리며 관직도 추첨에 의해서 배정한다. 민주 정체에서는 자유가 넘쳐, 무슨 말이든 할 수 있고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 가 보장된다. 그러나, 부(富)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 이 과두 정체를 몰락시켰듯, 이번에는 자유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과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한 무관심이 민주 정체를 몰락시키고, 참주 정체를 탄생시킨다.
개인적 야망의 달성을 위해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민중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참주가 된 자로 인해서 결국에는 나라 살림이 거덜나고 만다. 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밑그림’처럼 개괄적으로 그려 보며 그런 정체들을 닮은 사람들의 한생 과정에 대해서도 함께 살피게 되는데, 이는 가장 올바른 사람과 가장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음을 새삼 환기한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505-506
- 제9권의 논의 전개
제8권은 참주 정체에 관한 언급으로 끝나고, 정작 참주 정체를 닮은 사람에 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9권은 참주 정체를 닮은 사람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되는데, 먼저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탄생되며 그가 보이는 행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놀랍도록 적나라한 묘사를 우리는 만나게 된다. 이어 제2권에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올바름’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적극적인 옹호를 유도해 내기 위해서 행한 도전적 발언에 대한 결론적인 응답을 이제 얻게 된다.
한데, 이 응답은 세 갈래로 이루어진다. 첫째로는, 참주 정체를 닮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올바르지 못하며 가장 비참한 자임이 최선의 인간인 철인 치자와 대비되어 극명하게 드러난다. 둘째로는,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이 가장 참된 즐거움인지를 밝힘으로써, 어느 쪽이 가장 즐거운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 셋째로는, 즐거움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서 둘째 논의를 더 심화하게 되는 셈이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563
- 제10권의 논의 전개
제10권은 내용에 있어서 거의 반분되어 있다. 608b까지는 시(詩)와 관련된 것이고, 608c 이후는 각자가 이룩한 ‘훌륭함’ (덕)에 대한 보답과 상에 관련된 것이다. 앞서 제2권과 제3권에서는 어린이들의 건전한 시가 교육을 위해 시를 짓는 시인들이 지켜야 할 규범들과 관련된 언급들이 있었다. 그리고 제5권부터 제7권에 걸쳐서는 그 다음 단계의 예비 교육과 참된 철학적 인식을 위한 교육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런 논의들을 토대로 하여 제10권에서는 종래에 시(詩)가 거의 전적으로 떠맡다시피 한 교육을 이제는, 특히 이 ‘아름다운 나라’ 에서는, 철학이 떠맡을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언급하려 한다. 그래서 먼저 언급하게 되는 것이 시작(詩作) 행위의 성격과 그 대상에 관한 존재론적 위상(位相)이다. 시나 그림을 통한 예술 활동을 ‘모방’ 행위로 규정하는데, 이는 요즘 표현으로 하면 ‘묘사’ 라 해도 되는 말이겠고, 이 ‘모방’ 의 대상은 실재(實在)인 이데아 또는 형상이 아니라 ‘현상’이기 때문에, 모방을 통한 제작물은 실재에서 세 단계나 떨어져 있는 것이 되어, 그만큼 진실에서 떨어져 있게 마련이다.
또한 예술 활동이 인간의 이성적인 면을 고양하고 교육하는 데 마음을 쓰기보다도 즐거움을 주는 데 더 치중하는 한, 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시인의 활동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언급은 그동안 헬라스인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시가 누려 온 독점적인 지위를 차츰 철학이 빼앗아 가게 되는 데 따른 두 분야 사이의 갈등에 대한 철학 쪽의 해명인 셈이다.
후반부에서는 먼저 혼의 불멸에 대해 언급한 다음, 올바른 삶에 대한 보상이 생시에는 물론이고 특히 사후에 올바르지 못한 삶에 비해 얼마나 더 큰 것인지에 대해 언급하게 된다. 이와 관련된 언급을 하느라 기나긴 ‘에르’ 신화가 동원되는데, 그 분량은 제10권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된다. 이렇게 해서, 제2권 첫머리에서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한테 요구한 대로, ‘올바름’은 그 자체로도 좋은 것이지만 그 결과 때문에도 좋은 것임이 다 밝혀진 셈이다.- 박종현, 플라톤, 《국가(政體)》(박종현 역주, 개정증보판, 1997)에서의 해설, p.609-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