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
공학에 종사하는 사람
엔지니어(engineer)는 공학에 종사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현실성, 규제, 안전, 비용에 의해 부과되는 제한을 고려하면서 목표와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도록 기계, 체계, 구조, 물질을 발명, 설계, 분석, 제작,실험(테스트)하는 사람을 말한다.
엔지니어에 관한 인용
편집- 나는 공학과 공학의 역사를 그와 똑같은 방식(바티칸 시스틴 성당에서 사람들의 매너에 실망했지만, "주위의 소란일랑 무시하고" 미켈란젤로의 그림에 집중했을 때 느꼈던 위대함) 으로 바라본다.이 직업(엔지니어)은 그 안에서 자부심과 영감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에게 본질적으로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 -새뮤얼 플러먼, 《교양있는 엔지니어》
- 어느 누구도 동시에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엔지니어가 예술가나 시인, 또는 인문학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문명이 번성하는 것은 전문가들이 특정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로 의지하기 때문이다. -- 새뮤얼 플러먼, <<교양있는 엔지니어>> 37쪽
- 바쁜 엔지니어로서 우리는 그 세상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 이상을 탐사할 여력은 없다. 그러나 설령 일부분만 탐사하더라도, 그 해안선을 조망하기만 해도, 여기저기 항구에 들르기만 해도 삶은 더 좋게 바뀐다. -새뮤얼 플러먼,《엔지니어의 인문학 수업》
- 대부분의 실수는 결국 감독자의 부가적 관리만 있었다면 충분히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더구나 설령 부가적인 관리가 없었더라도, "실패의 절반 정도는 데이터, 도면 등에 대해 (…) 계획 입안 및 건설 과정에 관련된 사람이 비판적으로 검사만 했더라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새뮤얼 플러먼[1]
- 공학의 도덕성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바로 부주의와 엉성함, 게으름 그리고 집중력 부족이다. 엔지니어는 정직하고 고결하게 시작했다가도 일단 이러한 죄악의 포로가 되면 비도덕적으로 변하고 만다. 양심적으로 시작한 엔지니어는 끝까지 정직해야 한다. - 새뮤얼 플러먼[2]
- 그런데도 우리(엔지니어)는 만족스럽지 않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보물같은 기예가 흘러넘친다. 사회의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는 지적, 철학적 담론에서 우리는 약간 배제된 기분이다. (...) 엔지니어는 바쁘고 안정되게 살고 있지만 개인의 삶이나 사회에서의 역할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다. - 새뮤얼 플러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