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우당
대한민국의 작가, 시인,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 시민 운동가, 반전 평화 운동가.
육우당(六友堂, 1984년 8월 7일 ~ 2003년 4월 26일)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 시조 시인이자, 게이 작가, 연극배우, 성악가이다. 본명은 윤현석(尹賢碩)이며, 필명은 설헌(雪軒[1]), 미동(美童[2]), 천주교 세례명은 안토니오이다. 2003년 4월 26일에 대한민국 기독교 단체의 동성애 혐오에 항의하여 목을 매 자결하였다.
어록
편집-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은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비인간적이란 말이냐"
- "내 한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깨달음을 준다면, 나 죽은 게 아깝지 않아요.[3]"
-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받아줄 것이다.[4]"
- "제 깜찍한 위장이 배가 불러서 더 못 먹겠는데요?[5]"
- 2002년 12월 31일 동성애자인권연대 송년 모임에서
- "(동성애자 정기모임 동료들과) 고깃집에 갔는데 거기서 같은 반 친구들이 술을 마시고 있어서… 그걸 본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지만. 다행히도 그 애들은 내가 이반인 걸 몰랐다. 휴…. 근데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1시간 동안 울었다.[2]
- 2002년 11월 17일자 일기의 일부
- "2001년, 학교 친구를 좋아했다. 내가 게이인 걸 안 후부터 태도가 180도로 확 변했었던 적이 있다.[2]
- 2003년 1월 23일자 일기의 일부
- "무서운 발언이다. 그러나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하느님의 가호와 사랑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 "수많은 성적 소수자들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 반성경적이고 반인륜적인지[6]"
- "(내가) 죽은 뒤에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7]"
- 임종 전, 어느 지인에게 한 한마디
- “몰지각한 편견으로 이 사회는 수많은 성적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있다[8]”
-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며 그것으로 족하다.[8]”
-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에요. ...(중략)... 저는 여러분이 누구도 유황불 심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여러분도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니까요. 난 그저 편안히 쉬고 싶습니다. ...(중략)... 홀가분해요.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내가) 죽은 뒤엔 (다른 동성애자들도)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죠. ‘○○○은 동성애자다’라고요.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고 그로 인해 고통받지도 않아요."
- "형, 누나들의 수고가 다음 세대 동성애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9]"
- 유서의 일부
각주
편집- ↑ 육우당은 여전히 희망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참세상 2006.04.18
- ↑ 2.0 2.1 2.2 죽음으로 마감한 ‘커밍아웃’ 시사저널 2003.05.15
- ↑ 인권단체 “학생인권조례 성적지향 조항 삭제 우려” 헤럴드경제 2013.04.11
- ↑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받아줄 것이다. 당당뉴스 2007년 10월 29일자
- ↑ 나의 일곱번째 친구는 누구입니까 한겨레신문 2013.04.26
- ↑ 또 한 명의 게이가 자살하기를 바라는 건가 미디어스 2010.11.02
- ↑ '인권의 마지노선' 차별금지법은 먼 나라 이야기 경향신문 2013.04.27
- ↑ 8.0 8.1 “내 혼은 꽃비 되어” 참세상 2006.04.26
- ↑ 어느10대 동성애자의 자살 한겨레21 2003.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