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조선의 제4대 임금 (1397–1450)

조선 세종(朝鮮 世宗, 1397년 5월 15일 (음력 4월 10일) ~ 1450년 3월 30일 (음력 2월 17일), 재위 1418년 ~ 1450년)은 조선의 제4대 군주이며 언어학자이다. 그의 업적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은 명칭인 세종대왕(世宗大王)으로 자주 일컬어진다.

세종의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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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 7월 3일 신사 3번째기사
  • 삼국이 정립(鼎立) 대치(對峙)하여 서로 막상막하(莫上莫下)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1]
- 《세종실록》 35권, 세종 9년 3월 13일 신축 1번째기사
  • 원문 : 나랏말ᄊᆞ미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서ᇰ이 니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 몯ᄒᆞᇙ노미하니라 내이ᄅᆞᆯ爲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ᆯ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 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 현대어 :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아니할세. 이런 까닭으로 어린(미숙한) 백성이 이르고자 할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얻어(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어여삐(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 어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 쉬이(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 내가 만일 언문으로 삼강행실(三綱行實)을 번역하여 민간에 반포하면 어리석은 남녀가 모두 쉽게 깨달아서 충신·효자·열녀가 반드시 무리로 나올 것이다.
-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2월 20일 경자 1번째기사

세종에 관한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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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금은 슬기롭고 도리에 밝으매, 마음이 밝고 뛰어나게 지혜롭고, 인자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지혜롭고 용감하게 결단하며, 합(閤)에 있을 때부터 배우기를 좋아하되 게으르지 않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일찍이 여러 달 동안 편치 않았는데도 글읽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태종(太宗)이 근심하여 명하여 서적(書籍)을 거두어 감추게 하였는데, 사이에 한 책이 남아 있어 날마다 외우기를 마지 않으니, 대개 천성이 이와 같았다. 즉위함에 미쳐, 매일 사야(四夜)[2]면 옷을 입고, 날이 환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고, 다음에 정사를 보고, 다음에는 윤대(輪對)를 행하고, 다음 경연(經筵)에 나아가기를 한 번도 조금도 게으르지 않았다. 또 처음으로 집현전(集賢殿)을 두고 글 잘하는 선비를 뽑아 고문(顧問)으로 하고, 경서와 역사를 열람할 때는 즐거워하여 싫어할 줄을 모르고, 희귀한 문적이나 옛사람이 남기고 간 글을 한 번 보면 잊지 않으며 증빙(證憑)과 원용(援用)을 살펴 조사하여서, 힘써 정신차려 다스리기를 도모하기를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아, 문(文)과 무(武)의 정치가 빠짐 없이 잘 되었고, 예악(禮樂)의 문(文)을 모두 일으켰으매, 종률(鍾律)과 역상(曆象)의 법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는 알지도 못하던 것인데, 모두 임금이 발명한 것이고, 구족(九族)과 도탑게 화목하였으며, 두 형에게 우애하니, 사람이 이간질하는 말을 못하였다. 신하를 부리기를 예도로써 하고, 간(諫)하는 말을 어기지 않았으며, 대국을 섬기기를 정성으로써 하였고, 이웃나라를 사귀기를 신의로써 하였다. 인륜에 밝았고 모든 사물에 자상하니, 남쪽과 북녘이 복종하여 나라 안이 편안하여, 백성이 살아가기를 즐겨한 지 무릇 30여 년이다. 거룩한 덕이 높고 높으매, 사람들이 이름을 짓지 못하여 당시에 해동 요순(海東堯舜)이라 불렀다. 늦으막에 비록 불사(佛事)로써 혹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한번도 향을 올리거나 부처에게 절한 적은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르게만 하였다.
- 《세종실록》 127권, 세종 32년 2월 17일 임진 1번째기사
  •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殿下)께서는 하늘에서 낳으신 성인(聖人)으로서 제도와 시설(施設)이 백대(百代)의 제왕보다 뛰어나시어, 정음(正音)의 제작은 전대의 것을 본받은 바도 없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지극한 이치가 있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인간 행위의 사심(私心)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체로 동방에 나라가 있은 지가 오래 되지 않은 것이 아니나, 사람이 아직 알지 못하는 도리를 깨달아 이것을 실지로 시행하여 성공시키는 큰 지혜는 대개 오늘날에 기다리고 있을 것인져.
- 정인지,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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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선이 신라를 계승했으니 신라 시조에게만 제사를 지내자는 이조 판서 허조(許稠)의 상소에 대한 대답
  2. 사경(四更), 즉 새벽 1시~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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