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마키아벨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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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은 [[프로메테우스]]적 [[자유]]를 실천하고자 하는 인간은 항상 비운(悲運)을 맞이하며, 이를 꿈꾸는 인간은 비애의 사상가로 남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서양 근대의 고뇌와 딜레마는 고대의 신화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 강정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서양 근대 정치사상의 탄생〉 강정인, 김용민, 황태연 엮음,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
[[File:Benito_Mussolini_and_Adolf_Hitler.jpg|thumb|right|지금 우리는 무솔리니도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인재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무솔리니가 파시스트로 전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 지금 우리는 무솔리니도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인재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었던 ‘위계질서(Gherarchia)’라는 잡지에 소개한 글에서 보듯, 무솔리니는 마키아벨리로부터 ‘이기적 인간본성’과 ‘힘에 대한 찬양’만을 배웠다. 마키아벨리의 ‘힘’에 대한 통찰력이 ‘시민적 자유’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면, 무솔리니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는 자기의지의 관철을 위한 ‘권력’이 최대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로 전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 [[곽준혁]],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5242003505 마키아벨리 다시 읽기 (1) 이방인 마키아벨리]
 
* 마키아벨리는 당시 인문주의자들의 귀족적 [[공화주의]]를 보다 민중 친화적인 제도적 구상으로 전환시키려고 노력했다. 『군주』조차도 ‘자유’(libertà)의 용례를 따라가면 결국 공화정이 군주정보다 우월한 정치체제라는 설득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강의』는 고전적 공화주의의 ‘조화’(homonoia)라는 덕목을 ‘갈등’(disunione)의 미학으로 대체하고, 집단으로서 ‘인민’은 거대한 제국을 만들 가장 중요한 정치적 ‘힘’으로 부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