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폰 비스마르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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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비스마르크는 1890년에 사임해야 했으며, 말년은 회고록을 집필하며 조용히 보냈다. 그는 자신의 묘비에 “여기 빌헬름 1세의 충직한 신하가 묻혀 있다”라고 새겨달라고 했는데, 자신을 버린 젊은 황제에게는 충직한 신하이고 싶지 않음을 표현한 것일까. 이 ‘충직한 신하’의 걱정대로 빌헬름 2세의 정책은 숙적 [[프랑스]]와 [[러시아]]가 접근하여 양쪽에서 [[독일]]을 압박하는 구도를 초래했다. 그리고 복잡한 동맹관계의 매듭이 묘하게 뒤얽히며, 독일 제국은 세계대전을 거쳐 40여 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은 비스마르크의 정책이 안고 있었던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철과 피”에 의존하는 제국은 합리적인 틀에 언제까지고 묶여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 함규진,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3287 〈오토 폰 비스마르크〉]
*[[전투]]를 앞둔 군인들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하자는 소리를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 오토 폰 비스마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