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듯이, 오랫동안 한국 사회 윤리의 대종을 이룬 것은 불교적·유교적 요소였다. 그런데 이 '자연주의적'인 전통 윤리의 근간을 이룬 것은 '보은(報恩)' 사상이다.… 여기에 20세기 들어 기독교가 광범위하게 전파됨으로써 기독교의 '초자연주의적'인 '계명(誡命)'이 도덕 원칙으로 파급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 3대 종교의 윤리 요소가 고르게 미치고 있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마당에 현대 사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바처럼 한국 사회에서도 '선(善)'의 가치를 '이(利)'의 가치로 대치시키는 공리주의와, 아예 선의 가치를 무효로 만드는 물리주의가 확산 일로에 있다. 이런 상황이 한국 사회의 윤리 개념을 착종시키고, 비윤리적 상황을 가속화시켰다.
〈책을 내면서〉, 임마누엘 칸트, 《윤리 형이상학 정초》(백종현 역). 2005
유교 윤리는 근친주의, 위계주의, 연고주의를 부추긴다. 또한 초월적 절대자와 내세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하는 기독교 윤리도 현세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 한국 사회에서 '보편성'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칸트의 '인격주의적'인 자율적 '의무의 윤리'는 한국 사회 윤리의 근간을 세우는 데 좋은 방안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