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
독일의 철학자이자 작가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독일어: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이며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어록
편집《아침놀》
편집-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인간이 모든 사물에 성(性)을 부여했을 때 인간은 자신이 유희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깊은 통찰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아주 늦게야 인정했고, 어쩌면 지금도 전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존하는 모든 것을 도덕과 연관시켰고 세계에 윤리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것은 언젠가는 태양의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 갖고 있는 정도의 가치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 《아침놀》, 3. (박찬국 옮김)
- 가장 오래된 위로 수단.—첫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이 때문에 자신이 누군가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그는 자신에게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이러한 사실이 그를 위로한다. 두 번째 단계 : 인간은 불쾌감을 느끼거나 불운에 처할 경우, 그것을 벌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는 그것을 죄에 대한 대가이자, 실제의 불의 또는 추정되는 불의가 갖는 악한 마력에서 벗어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 수반하는 이러한 이익을 깨닫게 되면, 그는 더 이상 타인을 그 때문에 괴롭혀야 한다고 믿지 않게 된다.—그는 이제 다른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만족은 버리는 것이다.
- 《아침놀》, 15. (박찬국 옮김)
- ‘법의 이행’.—도덕적인 규정을 따랐는데도 약속되고 기대되었던 것과 다른 결과가 빚어지고,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나는 불행과 비참이 찾아올 경우, 양심적이고 소심한 인간들은 언제나 이렇게 변명한다. “[도덕적인 규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깊은 고통에 허덕이고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진 인류는 심지어 이렇게 선언할 것이다. “그 규범을 훌륭하게 실행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철저하게 약하고 죄 많은 존재들이며, 근본적으로 도덕을 지킬 수 있는 존재가 못 된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과 행운을 기대할 자격조차 갖지 못한다. 도덕적인 규정과 약속들은 우리보다 더 뛰어난 존재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 《아침놀》, 21. (박찬국 옮김)
- 덕의 배우와 죄의 배우.—덕을 통해 유명해진 고대인 중에는 자신의 덕을 연기한 사람들이 무수히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인은 태생적으로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것을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행하면서 그것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덕을 갖춘 모든 사람은 어떤 다른 사람의 덕 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덕과 경쟁했다. 자신의 덕을 보여주기 위해, 무엇보다도 특히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습에서 사람들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다. 보여줄 수도 없고 보여줄 방도도 없는 덕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이 덕의 배우들을 저지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 대신 기독교가 발명한 것은 죄의 역겨운 과시와 전시였다. 기독교에 의해 기만적인 죄책감이 탄생한 것이다(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기독교도들에게 이것은 ‘고상한 태도’로 간주된다).
- 《아침놀》, 29. (박찬국 옮김)
- 말이 우리에게 장애가 된다!—태곳적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제시했을 때 어떤 발견이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어떤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하나의 단어를 만들어냄으로써] 그것을 해결했다고 착각한 그들은 사실 해결을 막는 장애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현재 우리는 모든 인식에서 돌처럼 단단하고 영구히 전해져오는 말들에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경우 단어가 아니라 다리가 부러지기 십상이다.
- 《아침놀》, 47. (박찬국 옮김)
- 병에 대한 사상!—병자가 최소한 지금까지처럼 병 그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병에 대한 그의 생각 때문에 더 많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병자의 공상을 진정시킬 것.—이것이 중대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그래, 그대들은 이제 우리의 과제를 알겠는가?
- 《아침놀》, 54. (박찬국 옮김)
- 가련한 인류.—뇌 속의 피가 한 방울 더 많거나 더 적으면 우리의 인생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우리는 프로메테우스가 그의 심장을 쪼아 먹는 독수리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것 이상으로 이 한 방울의 피 때문에 고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 한 방울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지도 못하면서 ‘악마’라든가 ‘죄’가 원인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끔찍한 사태가 벌어진다.
- 《아침놀》, 83. (박찬국 옮김)
《즐거운 학문》
편집- 이 조야한 취향,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진리를 추구하겠다”는 진리에의 의지, 진리에의 사랑에 빠진 이 젊은이들의 광기는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렇게 하기에 우리는 너무 노련하고, 너무 진지하고, 너무 쾌활하고, 너무 많은 화상을 입었으며, 너무 생각이 깊다. 우리는 베일을 벗겨낸 후에도 진리가 그대로 진리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것을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벌거벗겨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에 관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세련된 일로 간주된다.
- 《즐거운 학문》, 제2판 서문 (안성찬·홍사현 옮김)
- 사람들은 지난 몇 세기에 걸쳐 과학을 촉진시켜왔다. 그 하나의 이유는 이를 통해 신의 선의와 지혜를 가장 잘 이해하게 되리라고 희망했기 때문으로, 이것이 (뉴턴과 같은) 위대한 영국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식의 절대적인 유용성, 다시 말해 도덕과 지식과 행복의 가장 내적인 결합을 믿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이 (볼테르 같은) 위대한 프랑스인들의 주요 동기였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악한 충동이 전혀 끼어들어 있지 않은 공평무사하고, 무해하고, 자기만족적이며, 진실로 무구한 것을 과학에서 얻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하는 자로서 자신을 신적으로 느꼈던 스피노자의 주요 동기였다. 이 세 가지의 오류가 과학을 촉진시킨 이유였다.
- 《즐거운 학문》, 37 (안성찬·홍사현 옮김)
- 부처가 죽은 후에도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동굴 안에서 엄청나게 크고 두려운 그의 그림자를 보여주었다. 신은 죽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식이 그렇듯이, 앞으로도 그의 그림자를 비추어주는 동굴은 수천 년 동안 여전히 존재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08 (안성찬·홍사현 옮김)
- 인식의 기원.ㅡ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끊임없이 계승되어 마침내 거의 인간의 본성처럼 되어버린 이러한 잘못된 믿음의 명제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지속적인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동일한 사물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물질•물체가 존재한다는 것, 사물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 우리의 의욕이 자유롭다는 것, 내게 선한 것은 그 자체로서 선하다는 것 등이다. 뒤늦게야 이러한 명제들을 부정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뒤늦게야 인식의 가장 무력한 형태인 진리가 등장했다. 우리 인간은 진리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 《즐거운 학문》, 110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대들은 밝은 대낮에 등불을 켜고 시장을 달려가며 끊임없이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 나는 신을 찾고 있노라!"라고 외치는 광인에 대해 들어본 일이 있는가? 그곳에는 신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 신을 잃어버렸는가? 그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물었다. 신이 아이처럼 길을 잃었는가? 다른 한 사람이 말했다. 신이 숨어버렸는가? 신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신이 배를 타고 떠났는가? 이민을 떠났는가? 이렇게 그들은 웃으며 떠들썩하게 소리쳤다. 광인은 그들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꿰뚫는 듯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신이 어디로 갔느냐고? 너희에게 그것을 말해주겠노라! 우리가 신을 죽였다—너희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대양을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지워버릴 수 있는 지우개를 주었을까? 지구를 태양으로부터 풀어놓았을 때 우리는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이제 지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모든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도 위와 아래가 있는 것일까?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신을 매장하는 자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신의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들도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버렸다! 우리가 신을 죽인 것이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위로를 얻을 것인가? 지금껏 세계에 존재한 가장 성스럽고 강력한 자가 지금 우리의 칼을 맞아 피를 흘리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서 이 피를 씻어 줄 것인가? 어떤 물로 우리를 정화할 것인가? 어떤 속죄의 제의와 성스러운 제전을 고안해내야 할 것인가? 이 행위의 위대성이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컸던 것이 아닐까? 그런 행위를 할 자격이 있으려면 우리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보다 더 위대한 행위는 없었다. 우리 이후에 태어난 자는 이 행위 때문에 지금까지의 어떤 역사보다도 더 높은 역사에 속하게 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2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그윽한 향불.--부처가 말하기를,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아첨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 말을 따라하기만 해도 그리스도교의 모든 공기가 즉시 정화될 것이다.
- 《즐거운 학문》, 142 (안성찬·홍사현 옮김)
- 필요는 발명의 원인이라고들 한다. 실제로 필요는 발명된 것의 결과에 불과한 경우가 종종 있다.
- 《즐거운 학문》, 205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에 대한 오해. ㅡ 위대한 천분을 지닌 사람들은 그 숭배자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고통을 겪는다. 이들이 겪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그들의 과업이 요구하는 희생이나 박해가 아니라, 저열하고 사소하며 사악한 순간들이 뭉쳐진 데서, 한마디로 자신의 위대성에 대한 회의에서 생겨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들에게 동정을 느껴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은 행복하고 위대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질투하고, 인간들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을 시기할 때 그는 고통을 느낀다.
- 《즐거운 학문》, 251 (안성찬·홍사현 옮김)
- 고통도 쾌락만큼이나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 《즐거운 학문》, 318 (안성찬·홍사현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편집머리말
편집- 홀로 남게 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2. (정동호 옮김)
- 차라투스트라는 군중을 바라보고는 의아해했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몰락이라는 점이다.
나는 사랑하노라. 몰락하는 자로서가 아니라면 달리 살 줄을 모르는 사람들을. 그들이야 말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경멸자들을 사랑하노라.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숭배자요, 저편의 물가를 향한 동경의 화살이기 때문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4. (정동호 옮김)
제1부
편집- 그렇다. 나의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욕구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물’이 ‘진실의 물’이라면 더러운 물이라도 텀벙거리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물 속의 차가운 개구리와 뜨거운 두꺼비쯤은 싫어하지 않고!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순진무구한 것, 쉽게 까먹는 것, 새로운 시작, 장난질, 혼자 굴러가는 바퀴, 스스로 시작되는 움직임, 선선히 대답하는 “네.” 이것이 어린아이 아니야?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세 번의 탈바꿈〉 (박성현 옮김)
- 깨어난 자, 깨우친 자는 말한다. 나는 전적으로 신체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니며, 영혼이란 신체 속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붙인 말에 불과하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는 ‘나’라고 말하면서 자부심을 가지지? 하지만 이 ‘나’보다 더 위대한 놈은 자네의 몸이고, 자네 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능이야. 자네 몸과 자네 몸의 지능은 ‘나’라고 떠벌이지 않고 ‘나’를 실행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몸을 경멸하는 사람〉 (박성현 옮김)
- 모든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글을 쓰려면,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삶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내게도 나비와 비눗방울,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서 나비와 비눗방울 같은 자들이 행복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쾌하고 단순하고 우아하고 활동적인 작은 영혼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노라면, 차라투스트라는 눈물을 흘리고 노래 부르지 않을 수 없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장희창 옮김)
- 나도 삶을 사랑해. 내 경우엔 나비나 비누거품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사람들 중에 나비나 비누 거품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행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돼. 이 가볍고, 바보스럽고, 섬약하고, 애처로운 작은 영혼들이 날개짓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나는 눈물이 나고 노래를 부르게 되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읽기와 쓰기〉 (박성현 옮김)
- 진정한 남자는 두 가지를 원한다. 모험과 놀이가 그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장난감으로 여자를 원하는 것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너희들에게 적이 있다면 악을 선으로 갚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것은 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그 대신에 그가 너희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했음을 입증하여 보여주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살무사에 물린 상처에 대하여〉(정동호 옮김)
- 자네 자신의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서, 자네를 다스리는 법률로 만들어 자네 머리 위에 걸을 수 있나? 그 법률에 의해 자네 자신을 재판해서 자네 자신을 처벌할 수 있나? 스스로 자신의 법률에 관해 재판관이자 처벌자가 되는 것은 끔찍한 일이야. 텅 빈 우주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 얼음 같이 차가운 고독의 숨결 속으로 던져진 별과 같은 존재가 되는 거지.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창조자의 길〉 (박성현 옮김)
-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위버멘쉬가 등장하기를 우리는 바란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베푸는 덕에 대하여〉, 3. (정동호 옮김)
제2부
편집- 밤이다. 때가 되니 물을 솟구쳐 올리는 온갖 샘들이 한층 더 소리를 높이고 있구나. 나의 영혼 또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다.
밤이다.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자들의 노래가 모두 잠에서 깨어나는구나. 나의 영혼 또한 사랑하는 자의 노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2부. 〈밤의 노래〉(정동호 옮김)
제3부
편집-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 다음 날의 찬란한 새벽에 이르는 길목과 같은 존재이기에 정오와 저녁을 기쁘게 즐기는 게 인간이란 것을 알았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옛 율법서판과 새 율법서판〉 (박성현 옮김)
제4부
편집- 창조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의 이기심 속에는 잉태한 자의 조심과 예감이 있다! 그 누구도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열매를 그대들의 온 사랑이 감싸 보호하며 키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보다 높은 인간에 대하여〉, 11. (정동호 옮김)
- 작은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부드러운 것, 가장 가벼운 것, 바스락거리는 도마뱀의 몸짓, 찰나의 숨결, 순간, 깜박이는 눈.… 이런 작은 것들이 최상의 행복을 만들어. 가만히 만들어!
-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정오에〉 (박성현 옮김)
《선악의 저편》
편집-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떠한가? 모든 철학자가 독단주의자였을 경우, 그들이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그들이 진리에 접근할 때 가졌던 소름 끼칠 정도의 진지함과 서툴고 주제넘은 자신감이 바로 여성의 바음을 사로잡기에는 졸렬하고 부적당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이 아닐까?
- 《선악의 저편》, 서문. (김정현 옮김)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이 이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만일 네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도 네 안으로 들어가 너를 들여다본다.
- 《선악의 저편》, 잠언과 간주곡 146 (김정현 옮김)
《우상의 황혼》
편집-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
- 《우상의 황혼》, 서문. (백승영 옮김)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8. (백승영 옮김)
- 삶에 대한 자신의 이유인 왜냐하면을 가진 자는, 거의 모든 방법, 거의 모든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 《우상의 황혼》, 1부: 잠언과 화살, 12. (백승영 옮김)
- 출신상 소크라테스는 최하층에 속했다: 소크라테스는 천민이었다. 그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며, 직접 확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못생긴 외모는 그 자체로서 일종의 이의 제기이고, 그리스인 사이에서는 거의 반박이기도 했다.
- 《우상의 황혼》, 소크라테스의 문제. 3. (백승영 옮김)
- 유명한 근대적 '객관성'이라는 것은 나쁜 취향이며 전형적인 저속함이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 이것에 대해 우리의 학교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 《우상의 황혼》, 독일인에게 모자란 것 (백승영 옮김)
- 강한 믿음에 대한 요구는 강한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강한 믿음을 가진 자는 회의라는 사치를 자기 자신에게 허용해도 되는 자이다.
-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백승영 옮김)
《안티크리스트》
편집- 여기서 어떤 결론이 도출되는가? 《신약성서》를 읽을 때는 장갑을 끼는 게 좋다는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불결함이 그렇게 하도록 거의 강요하고 있다.
- 《안티크리스트》 (백승영 옮김)
- 《신약성서》에서는 경외받아 마땅한 형상은 단 하나만 나타난다는 것을 내가 더 말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였다. 유대인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것을 그는 자신에게 설득시킬 수 없다. 유대인 한 명이 더 있거나 없거나―이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진리'라는 말이 자기 앞에서 뻔뻔스럽게 오용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그 로마인의 고결한 조소가 《신약성서》를 풍부하게 해주었다. 가치를 지니고 있는 유일한 말을 가지고서 말이다―그의 비판이었고, 그의 파괴였던 : 그 말은 "진리가 무엇이란 말인가!"였다……
- 《안티크리스트》, 46. (백승영 옮김)
- 그리스도교는 헬레니즘이 넘쳐나는 건강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병을 필요로 한다.
- 《안티크리스트》, 51. (백승영 옮김)
- 그들이 지나간 길 위에 그들은 핏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들의 어리석음은 진리를 피로 입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피는 진리에 대한 최악의 증인이다 ; 피는 더없이 순수한 가르침조차 마음의 망상과 증오로 중독시켜버리기 때문이다.
- 《안티크리스트》, 53. (백승영 옮김)
- '성스러운' 역사를 그것이 마땅히 불리어야 할 이름인 빌어먹을 역사라고 명명해야 한다 ; '신', '구세주', '구원자', '성자'라는 말들은 욕설이나, 범죄자에 대한 표지로 사용해야 한다.
-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교 반대법
《이 사람을 보라》
편집-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 종교는 천민의 사건이다.
- 《이 사람을 보라》, 왜 나는 하나의 운명인지. 1. (백승영 옮김)
유고
편집- 모든 운동은 몸짓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힘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수단이 되는 일종의 언어다. 비유기적 세계에는 오해가 없다. 전달이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유기적 세계에서 오류가 시작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종교들은 도덕과 결합되지 않은 채 가장 오랜 시간 생존하고 있다. 도덕에서 자유롭다. 모든 종교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명백하게 파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종교에서 곤궁으로부터의 구원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곤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의 구원 또한 원한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우리 철학자들이 철학은 인식 능력의 비판으로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거의 우스운 일이다.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식 결과에 관해 의심하게 되었다면, 인식의 기관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철학을 "인식 이론에의 의지"로 환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치 그렇게 확실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나는 철학자들 중에서 관조적인 사람, 자기 자신 안에서 휴식하는 사람, 행복한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그들에게는 형성하는 힘과 정직성의 세련됨이 결여되어 있다.
- 유고, N VII 2b, 1885년 가을~1886년 봄
- 칸트의 비판주의의 뭔가 수상쩍은 얼룩이 점차 눈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보였다 : 칸트는 "현상"과 "물 자체"를 구별할 권한을 더 이상 갖지 않았다—현상으로부터 현상의 원인을 추론하는 것을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여겨 거부하는 한, 그는 금후 이렇게 오래된 통상적인 방식으로 구별할 권리를 스스로 잘라냈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만약 우리가 언어적 속박을 받지 않고 행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생각하기를 중단할 것이다. 우리는 회의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하나의 한계를 한계로서 보게 된다.
- 유고, N VII 3, 1886년 여름~1887년 가을
- 남자가 여성에 관해 무엇을 느끼는지 의식하는 여자는, 치장하고 아름답게 걷고 춤추고 상냥한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이상화하려는 남자의 노력에 부응한다 : 마찬가지로 그녀는 수치심을 보이고 수줍어하고 거리를 둔다—그렇게 하면 남자의 이상화 능력이 자란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 유고, Mp XVII 3c. 1887년 여름
- 소피스트들은 제1진리를 제시한다. '도덕 그 자체', '선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 영역에서 '진리'를 논하는 일은 사기라는 것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 우리는 적어도, 플라톤은 자신이 조건부 진리로도 간주하지 않았던 것을 절대적 진리로서 가르치고자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말하자면 '영혼'의 특별한 존재 방식과 특별한 불멸성을
- 유고, W II 5, 1888년 연초
출처 없음
편집- 곱사등이에게서 그 혹을 떼어 버리면 그에게서 혼을 없애는 것이다.
- 지식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렇게 많은 수치를 극복할 수 없을 경우 지식의 매력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우리가 양심을 길들이게 되면, 양심은 우리를 입맞춤과 동시에 깨물어 뜯는다.
- 나의 가장 강한 특질은 자기 극복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그것을 무엇 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다. 나는 항상 깊은 물 속에 있다.
- 어느 정도 깊이 괴로워 하느냐 하는 것이 인간의 위치를 결정한다.
- 사랑이 두려운 것은 사랑이 깨지는 것보다도 사랑이 변하는 것이다.
-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
- 용기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더욱 강하게 만든다.
- 나는 무신론을 증명의 결과로서 이해하지 않고, 즉각적인 사실로서 받아들인다.
-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 안에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한다.
니체 관련 어록
편집- 만남은 상호 대립하는 현상 간의 만남의 불가능을 관통해 이루어지는 공명 현상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다만 개념의 차원에서 만남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것은 역설로밖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만남이며, 니체와 그리스 고대의 만남은 이러한 식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는 자신의 관심사가 지금, 그리고 여기임을 누차 강조하면서, 오로지 지금의 것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고전적 고대를 향한 충동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탈레스에서 소크라테스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이 순수하고 독창적인 사상가 유형이었던 것과 달리 플라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이전 철학자들의 유형을 대표하는 피타고라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의 이러한 언급의 요체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의 전 사유를 관통하며 후기까지 이어지는 일관된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니체의 저작과 그의 철학의 특성을 놓고 볼 때, 그의 사유는 중간 고리 없이 고대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또 반대로 중간 단계 없이 고대에서 현대로 비약한다.
- 김기선, 〈해설:니체의 그리스, 고대와 현대의 저편〉, 프리드리히 니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이러한 맥락에 관한 추정·플라톤의 대화 연구 입문·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유고(1846년 가을~1868년 봄)》, 책세상, 1999.
- 1888년, 이 해는 니체의 여섯 작품이 한꺼번에 마치 거센 폭풍처럼 밀어닥친 해이다. 1887년 가을부터 시작된 심각한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이때 자신의 생애에서 최고로 생산적인 해를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888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니체가 10여 년간이나 지속되는 긴 어둠의 길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이기도 하다.…철학자 니체는 무엇을 위해 1888년 한 해에 자신의 마지막 정열과 혼을 불태웠는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마지막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니체는 더 이상은 현대 세계와 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경멸을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고함을 질러댄다. 그의 모든 논거가 현대에 대한 거부와 구역질 사이에서 터져나온다. 그는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데카당스!라고 부르짖는다. 현대 세계의 얼굴에 대고 그리스도교!라고 부르짖는다.
- 백승영, 〈해설: 영원한 긍정의 노래〉, 프리드리히 니체, 《바그너의 경우·우상의 황혼·안티크리스트·이 사람을 보라·디오니소스 송가·니체 대 바그너(1888~1889)》, 책세상, 2002.
- 니체의 <밤의 노래>는 맑고 차갑고 투명한 고독의 극치에서 외친 탄성 같다. 감탄할 만한 언어의 구사, 이미지의 맑음, 표현의 매력, 도취시키는 법…….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의 하나다.
- 전혜린, 〈미친 듯이 살고 싶다〉
- 이같은 구성과 주제를 놓고 보면 《차라투스트라》는 지혜서나 성찰록 또는 그 흔한 인생록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에서 삶의 지혜를 일깨우거나 관상적 삶을 그린 지혜서나 성찰록과는 사뭇 다르다. 또 삶에 대해 감상적 푸념을 늘얺거나 처세의 책략을 다루고 있는 인생론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니체는 글을 쉽고 간결하게 썼다. 특히 《차라투스트라》가 그러한데 난삽한 개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그만큼 평이하고 투명한 것이 그의 글이다. 이야기가 흥미롭고 극적인데다 글 또한 유려하여 독자들을 사로잡는 마력까지 있다.
- 정동호, 〈해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7
- 프리드리히 니체의 비극은 모노드라마처럼 펼쳐진다. 그렇기에 그의 비극은 삶이라는 짧은 무대장면 위에 자신의 형상만을 올려놓는다.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리는 그 모든 행위들에는 고독하게 홀로 싸우는 니체가 있다. 어느 누구도 그의 곁에 다가서거나, 그와 마주치지 않는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
- 니체의 비극은 배우들이나 상대역, 청중도 없이 그 자신의 영웅비극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본래의 관람석, 풍경, 도구, 의상도 없어서, 마치 공기가 희박한 이념의 무대에서 홀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젤, 나움베르크, 니스, 소렌토, 실스 마리아, 제노바 등의 이름은 그의 실제 거주지가 아니라 불타는 날개로 통과한 길들의 표시이거나 차가운 무대, 말 없는 색깔에 불과하다. 참으로 비극의 무대장치는 늘 동일하다. 고립, 고독, 저 끔찍한 침묵, 유리 안의 종처럼 그의 사유를 감싸고 있는 대답 없는 고독, 꽃이나 색채, 음향, 동물이나 인간도 없는 고독이 무대를 장식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 《니체를 쓰다》 (원당희 옮김)